Michael

"인간들은 있지, '천사' 란 존재를 좋아한대!"
천사...? 생전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아이는 절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를 본 소녀는 평소와 다름없이 활기찬 목소리에 의기양양한 표정까지 띄어가며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 훈련만 하자니 너무 지루했던 거 있지? 그래서 몰래 빠져나왔다가 모험가 일행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어. 그닥 할 것도 없어서 이야기를 조용히 엿듣고 있었는데 말이야. 그 일행 중 한 명이 인간계에 다녀왔다나 봐! 막 인간이 따르는 종교와 신화에 대해 말하는데 꽤나 흥미진진한 거야. 그래서 끝까지 들어보려고 했는데, 이게 원, 결국 도중에 선생님께 들켜버리고 말았지 뭐야..."
그르르르, 소리까지 내가며 그때 당시의 불만을 생생히 재현하는 소녀의 모습은 아이를 이야기에 몰두시키기에 충분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소녀가 흥미에 맞지 않는 훈련을 그만두고 이야기꾼이 되어 자신과 이곳저곳 여행을 다녀보길 바란 적이 있었지만, 소녀가 훈련에서도 그 누구보다 특출난 존재임을 알고 난 이후론 꿈 속에서나 나올 법한 그 소망을 슬며시 내려놓기도 한 아이였다. 몸이 약해 골칫덩이 취급 받는 아이와 달리 소녀는 강인한 데다 똑똑하기까지 했다.

"근데 있잖아...난 너에게 이름을 하나 지어줄까 해..."
한창 툴툴대던 소녀가 대뜸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잠시만, 이름? 골칫덩이 취급도 모자라 멸시받기까지 하는 나에게? 아이의 생애에 이름이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자신을 '아가', '얘야', '꼬맹아', '그 애' 라 칭했고, 심하게는 '나비야' (이름모를 고양이를 부를 때 쓰는 말을 멀쩡한 용에게 쓰다니!) , '그것' 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보다도 더한 정도의 모욕을 들은 경험이 있단 건 지나가던 용들도 식은 죽 먹기만큼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겠지. 이런 자신에게 이름이라, 아이는 자연스레 흥미가 갈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소녀가 자신을 놀리면 어떡하지, 그럼 정말 못 견딜 텐데 말이야, 노심초사해가며 말이다.
이윽고 소녀가 아이의 귀에다 조심스레 속삭였다. 미카엘.

미카엘...? 이건 또 처음 듣는데. 또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아이의 귀를 소녀의 입은 떠나갔다. 허나 이야기는 끝난 게 아니어서, 소녀는 다시금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천사는 인간계를 만드신 하나님을 따르는 존재로서 악마에 대항해 인간에게 도덕과 선을 퍼뜨리는 역할을 해. 미카엘은 그 천사들을 대표하는 이들 중 한 명이고."

그렇단 건.....

"그, 넌 모든 이들이 널 싫어하는데도 선량하고 순하게 잘 자라왔어. 그런 네가 내심 자랑스러웠거든."

아.......

"그런데 오늘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네가 떠오른 거 있지? 그래서...헤헤."
멋쩍은 듯 웃어보이는 소녀의 모습이 보이는 둥 마는 둥 아이는 벙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기쁨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애초에 아이는 무슨 일이 있든 (이건 좀 과장된 표현이로군. 미세한 변화쯤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변함없는 포커페이스로 유명하여 심술궂은 아이들의 도전욕을 자극시킬 정도였다. 저기, 맘에 안 든 거야? 소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이의 시야에 들어섰다.

".......아니, 정말 멋져."
눈물이 맺힌 어린이의 모습만큼이나 당황스러운 게 또 있을까? 이 진리에 걸맞게 소녀의 얼굴 또한 당황으로 물들고야 말았다. 아아아! 당혹스러움에 지른 소리는 아이의 "멋져" 란 말이 떠오르자 민망한 단말마가 되어 울려퍼졌다.
"아.....참! 이름이 있으면 어찌 쓰는지도 알아야지!"
소녀는 멋쩍은 듯 박수까지 짝, 한 번 쳐가며 이 상황을 무마하려 했다. 곧 소녀의 손은 자그마한 가방을 빠져나와 필기구와 종이로 무언가를 끄적여댔다. 얼마 안 가 아이의 손에 들어온 종잇조각엔 Michael 이란 단어가 가지런한 글씨체로 적혀져 있었다.
"이름은 어찌 쓰는지를 알아야 유용한 법이야. 꼭꼭 지니고 있다가 필요할 때 써먹어. 여기 아이들은 놀리려 들지도 모르니 조심해서 쓰고."
소녀가 싱긋 웃어보였다.

...아이가 침대 가까이의 책장에서 몇 권 꺼내 읽은 바에 따르면, 웃음은 하품과 더불어 가장 잘 전염되는 거라고 한다.
그리고 이 진리에 걸맞게 소년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정말 고마워."
소년은, 정말로 보기 드물게 따스히 웃으며,
"누나."
자신의 친누이에게,
애정어린 눈빛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