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er

달렸다.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저 살기 위해 달렸다.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넌 늑대가 아니야. 날카로운 이빨이 가죽을 넘어 심장 언저리까지 꿰뚫었다. 그들과 똑같이 네발로 걸었는데, 똑같지 않다고 한다. 그들과 똑같이 부드러운 털을 가지고 있었는데, 너는 다르다고 한다. 이제 막 나기 시작한 이빨은 곧 그들과 같아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넌 아니라고 한다.
그럼 난 어디에 있어야 해? 네발이 아닌 두발로 서 다른 이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어색한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자, 두발로 선 들은 소리를 지르며 처음 보는 날카로운 이빨로 자신을 공격해 왔다. 놀라 자빠지듯 도망쳐 달렸다. 하얀 눈 위에 핏방울이 후드득 뿌려졌다.
아아, 두발도 네발도 모두가 아니라고 한다. 달려가는 이 땅 위의 누구도 자신은 아니라 한다.
괴로운 숨이 자신을 잡아먹듯 턱 끝까지 차올라 늑대는 그대로 눈밭위에 쓰러졌다. 컥. 컥. 붉은 피는 가슴의 상처에서 나오는 것인지,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얀 눈밭이 더 하얗게 보인다. 세상의 끝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고요했다.
“춥겠다.”
좁혀져 가는 세상 속에서, 웅얼거리는 듯 작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온통 새하얀 새하얀 무색의 세상에서, 그렇게 그는 홀로 색을 가지고 서 있었다. 축축한 털 위로 색을 가진 이의 손이 덮어진다.
늑대는 눈을 감았다. 그것은 지금까지 세상의 끝이었고, 또 시작이었다.

늑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관두고, 두 발로 선 것은 딱히 인간을 더 좋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이가 두 발로 서 있었다. 그래서 로저는 지금 두 발로 서는 것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