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는 테이블위에 놓인 봉투를 뜯었다. 아무런 문양 없이 씰만 찍힌 봉투안에서 나온것은 세장의 사진이었고, E는 그것들을 살피다가 그 중 하나를 집어들었다. 험한 일이라곤 한번도 해본적이 없는 듯 상처없이 가늘고 긴 손가락 사이에 자리한 사진속에선 서늘한 눈을 지닌 사내가 어딘가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검푸른색을 휘감은 사내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어 그것이 마치 고집 센 사내의 성격을 말해주는 듯 했다. 그것을 보는 E의 은청색 눈매는 장난스러운 선을 그려냈고 휜 입술 사이에선 웃음소리가 샜다.

두번째 사진 속 사내는 별다른 문양없이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있는 낡은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E는 그것에 잠시 시선을 두다가 세번째 사진으로 눈동자를 굴렸다. 세번째 사진 속 사내는 은색깃털이 제법 화려하게 흔들리는 새하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체 가면을 쓴 다른 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곤 있지만 E는 그 사람이제가 알고있는 사내임을 의심치 않았다.

"마치 찾아달라는 것 같네요. 숨바꼭질이라니, 귀엽기도 하지."

꿀이라도 바른게 아닐까 싶을만치 달콤하게 흘러나오는 음성과 다르게 가는 손가락 사이에 자리한 사진은 그 끝부터 불이 붙어 화려하게 타올랐고 그 불꽃은 악귀처럼 검은사내의 모습을 집어 삼켰다.

"그렇지 않나요?"

E는 사진이 불타고 남은 검은재를 털어내며 뒤에 서있던 누군가에게 말을 건넸다.

언제나와 똑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몸을 돌린 E의 눈에 비친 사내는 목에 하얀 붕대를 두르고 있었다.

"아-하, 말을 못했죠? 내가 깜빡했네."

물론 사내의 성대를 잘라낸 것은 E 자신이었다. 사내는 언뜻 가벼워만 보이는 E가 제 성대를 잘라내던 순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당시 E는 제 피가 묻은 나이프를 핥아내며 악귀처럼 웃고 있었다.

"이렇게 불편한줄 알았다면 성대가 아니라 손가락을 자를걸 그랬네요."

그때와 다를 바 없이 악귀의 웃음기 어린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순간 사내는 손끝이 서늘해 저도 모르게 자신의 손가락을 확인하듯 그 끝을 어루만졌다.